오색단풍의 파노라마가 온누리를 수놓던 시월 중순의 어느날, 창졸간에 날아든 그대의 비보가 부음으로 이어질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딸, 그리고 세상의 번뇌와 고민을 모두 내려 놓은채 떨어지는 낙엽을 따라 다시는 올 수 없는 머나먼 길을 홀로 떠난 그대!

생자필멸! 생명있는 모든 것이 그러하듯, 무엇보다도 거스를수 없는 자연의 순리 앞에 그대 또한 예외없이 떠나왔던 그곳으로 돌아갔구료.

그로 인해 불꽃처럼 뜨겁고 강열했던 생의 열정은 멈추었고 고난과 영욕의 한많은 삶도 거기까지였네. 애끓는 유족과 조문객의 호곡이 이어지고 영원한 이별

을 서러워하는 지인의 탄식도 이젠 가을 바람처럼 흩어저 모두 일상으로 돌아왔다네.

그렇게 자네와의 영별이 보름여 되었건만 세상의 모든 것과 일상은 그대로 인데 반해 그대는 지구행성 어디에도 존재치 없음이 애타고 원통할 뿐이네.

특히, 나보다 졸지에 생때 같은 가장을 잃은 유족의 아픔은 필설로 다하기 어렵다네.

환갑도 못 채우는 그 짧은 생을 살다 가려고 그렇게 반듯하고 올곧게 열심히 살았었던가를 묻고 싶네. 때로는 적당히 불의와도 타협하고 대충 눈속임 해가며 사는 것이 인지상정 이거늘 그대는 언제나 처음처럼 원칙과 소신을 생명같이 여겨 왔네.

그런 결과 늘 바쁜 일상에 파묻혀 살았고, 우리 국민 팔할이 다녀 왔다는 해외 여행은 사치로 치부했고 그 흔한 나들이 한번 가질 못했음은 무엇으로 항변할건가?

어디 그뿐이랴? 요즘 같은 세월에 맛난 제철 음식을 제대로 먹었냐?, 매무새를 한번 갖추었더냐?

그대를 위해 단돈 십만원 한 장 소비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그럼에도 일은 항상 차고 넘첬고, 바쁜 만큼 물질적인 이득은 보잘 것 없었으며 늘 적자 면하기 빠듯한 살림 이었지. 고급 기술을 갖추었음에도 공사비가 저렴했으며 빈틈없이 야무진 손 맵씨까지 겸비하였기에 건축주 입장에서는 선호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본인은 이같이 불행의 악순환만 반복되어 왔지 않았던가?

그런 와중에도 신공업 단지 입주업체 총무를 맡아, 평소 어려운 영세 소상공인의 복리증진과 권익향상에 노심초사해 왔슴에 인간적인 경의와 존경을 드리는바네.

이는 오직 양심과 도리를 최우선으로 삼는 그대의 가치관 때문으로 나는 풀이하며 그 삶의 궤적을 나는 존중하여 왔네.

한번의 일화가 있었지 않은가? 지금부터 5년전 내가 읍내에 터전을 마련하여 생에 첫 주택을 신축함에 있어 자네가 공사를 맡았잖아. 때마침 중복이여서 수고하는 인부에게 약소한 회식비를 전하려던 참인데 당신은 이것 마저도 완강히 거부했네.

이유인즉 나의 경제적 사정을 고려하여 가급적 과외지출을 막으려는 우정어린 마음으로 해량 하였으나 그때는 정말 답답하고 이해할수 없었다네.

오늘날 대다수 자본가들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경영이념으로 추구함에 비춰볼 때 자넨 이런 부류와는 거리가 멀다네. 아니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고 보는게 올바른 표현일 게야.

그래서 요즘 세상에 그대 같은 양심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불가사의 아닌가 싶네 그려.

대의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는 나 또한 그대가 내 친구인 것이 정말 자랑스럽고 고맙네. 불의가 횡행하고 거짓이 진실을 호도하는 이 더럽고 혼탁한 세상에 그대는 이시대 마지막 양심가요, 사표였네.

정의가 사라지고 특권과 반칙이 난무하는 타락된 오늘날, 그대는 한줄기 빛으로 언제나 나와 함께 할것이고 모든 이에게 큰 울림으로 작용할 것일세.

그러나 이또한 부질없는 일이라네 그려. “날이 추워진 후에야 송백이 푸르름을 비로소 알듯” 이제 와서 천상의 친구를 못잊고 그리워하고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살아 생전 밥한끼, 감사표현 제대로 못한 우매한 내가.........

그러나 어쩌겠나 친구! 지나간 과거를 되돌릴 수 없는 법, 부디 천상에서 평안과 안식으로 영면하시길 바라오.

끝으로 평생을 한결같이 가족만을 위했던 착하디 착한 남편을 잃고 천붕의 아픔으로 침잠하고 계실 미망인께 소설가 박완서님의 어록으로 다소나마 마음의 안정과 위안을 얻으시길 빌어마지 않으며 이 보잘 것 없는 방백을 마치고자 하네.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견디는 것입니다”

논설위원 박병칠  news91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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